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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3 13:10:38 이창섭
트레이드 데드라인 종료, 트레이드의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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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LB.com] [사진=MLB.com]

 

논웨이버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지나갔다. 마감시한 날 15건을 비롯해 마지막 이틀 동안 22건의 트레이드가 쏟아졌다. 탬파베이 크리스 아처가 피츠버그로 옮긴 것이 가장 놀라운 트레이드로 꼽힌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7월31일(현지시간)로 확정된 것은 1986년이다. 2016년 7월31일이 일요일에 걸리면서 하루 밀렸지만, 1986년 이후 트레이드 마감시한은 늘 7월 마지막 날이다.

 

마감시한 개념은 1917년에 확립됐다. 내셔널리그가 먼저 8월20일로 정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수를 트레이드 하려면 웨이버 과정을 먼저 통과해야 했다. 지금의 8월 웨이버 트레이드다.

 

아메리칸리그는 1920년부터 이 절차를 따랐는데, 마감시한이 내셔널리그하고 다른 7월1일이었다. 양 리그는 이듬해 8월1일로 합의를 봤다가, 1923년부터 6월 15일로 바뀌었다. 이 마감시한이 1985년까지 유지됐다.

 

트레이드 역사는 마감시한보다 더 길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트레이드는 1886년 11월에 있었다. 신시내티 포수 잭 보일과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외야수 휴즈 니콜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신시내티는 보일을 넘기면서 현금 350달러도 얹어줬다.

 

Emotion Icon 잭 보일·휴즈 니콜 통산 성적

 

니콜은 리그 최단신 선수 중 한 명이었다(168cm). 위협적인 빠른 발을 앞세운 대도였다. 신시내티로 이적한 1987년에 무려 138도루를 기록했다. 이는 1982년 리키 헨더슨의 130개를 넘어서는 유일한 기록이다(130도루는 현대 야구 단일 시즌 최다도루).

 

반대로 보일은 리그 최장신 포수였다(193cm). 니콜보다 8살이 어렸다. 지금은 유망주 가치가 워낙 높아졌지만, 그때는 즉시전력감에 더 무게를 둔 시대였다. 신시내티가 보일에 현금을 더한 것도 그 이유였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그러고 보니 KBO리그 최초의 트레이드도 현금이 있었다. 국내 첫 트레이드는 1982년 12월7일에 성사됐다. 삼성 서정환이 현금 1500만원에 해태로 이적했다. 서정환은 국가대표 유격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대웅, 천보성, 오대석이 버티고 있는 삼성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에 끊임없이 트레이드 요청을 했고, 결국 삼성 서영무 감독의 마음을 돌렸다. 서정환은 해태에서 우승을 6번이나 함께 했다.

 

오늘날은 트레이드를 통한 선수 이적이 더 활발해졌다. 예전에 비하면 부정적인 의미도 많이 사라졌다. 팀과 선수 모두 또 다른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트레이드다.

 

- 이창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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