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5 13:30:00 최승표
[일구이언 21] "네가 2군으로 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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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2군으로 가는 이유는..."

 

한화의 한용덕 감독이 두산에서 코치를 하던 시절, 나는 투수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뛰어오며 투수를 향해 미소짓는 그의 모습을 좋아했다. 많은 경우에 투수를 바꾼다는 것은 팀에게나 선수에게나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특히나 마운드를 내려오는 투수의 마음은 아쉬움과 후회 등으로 복잡할 수 밖에 없다. 

 

 

한용덕 코치의 미소는 마치 고된 하루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자식을 위해 정성껏 저녁밥상을 차려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인간의 감정에 대해 이해가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얼마전에 접한 한용덕 감독의 일화를 통해서도 그가 지니고 있는 인간관을 엿볼 수 있었다. 2군으로 내려가는 선수를 직접 불러 왜 2군으로 가는지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면서 선수가 납득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감독님은 선수를 2군에 내려 보낼 때는 꼭 불러서 왜 내려가는지, 뭐가 부족한지, 무엇을 만들어 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하시더라. 개인 감정이나 주변 평판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팀에 필요한 역할을 해달라고 선수에게 당부를 한다. 선수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결정은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 정확한 메시지를 주고, 방향성을 제시하니 선수들도 속으로는 불만이 있을지언정 납득을 한다. 그런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선수단과 프런트의 혼선도 줄일 수 있다." (중앙일보, 2018년 7월 2일 기사)

 

[사진=일간스포츠 제공]

[사진=일간스포츠 제공]

 

감독이 선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시시콜콜 전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보통은 감독이나 프런트가 내린 결정을 그나마 선수와 평소 친근하게 지내는 코치가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고맥락 문화에서는 2군에 내려가게 되었든, 선발투수가 불펜으로 옮기게 되었든 감독으로부터 선수가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사진=amazon.com 제공] [사진=amazon.com 제공]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는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이 창안한 표현으로 의사소통에서 말이나 글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나눈 구분이다. 저맥락 문화는 말 그대로 의사소통 당사자 사이의 맥락보다는 말 자체를 중요시한다. 

 

대표적인 저맥락 문화권인 북미와 북유럽 사람들은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관행 속에 산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고맥락 문화에서는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그 뒤에 숨은 뜻을 고민한다. 

 

오히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조심성이 없거나 '싸가지가 없는' 부적응자 취급을 당하기 쉽다. 집단생활에서는 눈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사진=스포츠조선 제공] [사진=스포츠조선 제공]

 

우리사회 곳곳에 깊게 뿌리내려 있는 고맥락 문화 속에서 한용덕 감독의 사례는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팀 선수가 2군에 내려가서 '알아서 잘' 하기를 바라지 않고 분명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팀의 결정이니 선수는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여기지 않고 상심해 있을 선수의 마음도 돌보고자 했다. 이유도 모르고 2군에 내려가는 선수가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온전히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는 어렵다.

 

나는 한용덕 감독이 2군에 내려가는 선수를 불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코치 시절 마운드를 내려가는 선수에게 지어준 환한 웃음을 또한번 떠올린다. 냉엄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선수를 향해 한용덕 감독은 그렇게 웃어주었을 것 같다. 

 

* 최승표님의 코치라운드 (링크) 클릭! 

 

- 최승표 -

전체 댓글 3

0 / 600
  • FA 11078호 2018.07.05 13:52

    이런 모습들이 너무 좋네요. 제가 지금의 이글스를 좋아하는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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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돌이 12409호 2018.07.05 22:19

    항상 투수에게 웃으면서 올라오신 그 모습을 잊을수가 없어요..ㅠㅠ 한화로 돌아가실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지금 시즌의 반환점을 돌았다 하더라도 다시 그모습을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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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 11078호 2018.07.05 13:52

    이런 모습들이 너무 좋네요. 제가 지금의 이글스를 좋아하는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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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돌이 12409호 2018.07.05 22:19

    항상 투수에게 웃으면서 올라오신 그 모습을 잊을수가 없어요..ㅠㅠ 한화로 돌아가실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지금 시즌의 반환점을 돌았다 하더라도 다시 그모습을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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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돌이 10071호 2018.07.06 22:20

    저도 한용덕코치님의 저 아빠미소를 넘나 사랑했던 팬으로 한화로 떠나실때 슬펐습니다. 그래도 가셔서 팀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리빌딩하셔서 보기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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